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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죽림칠현(竹林七賢)과 무언의 정치적 표현
기사입력  2022/10/17 [19:41]   홍양선 자유기고가/프리스트커뮤니케이션즈 대표

 

【충북 브레이크뉴스】=죽림칠현(竹林七賢)은 부패한 정치권력에는 등을 돌리고 죽림에 모여 거문고와 술을 즐기며 청담(淸談)으로 세월을 보낸 일곱 명의 선비를 일컫는다. 시대는 바야흐로 삼국지의 무대였던 위의 조조가 죽고 사마씨 일가에 의해 진이라는 새시대가 열릴 무렵이었다. 위(魏)나라에서 진(晋)나라로 왕조가 바뀌자(AD 266년경) 혼란을 피해 대나무 숲으로 들어간 이들은 완적(阮籍) · 산도(山濤) · 혜강(嵇康) · 향수(向秀) · 유령(劉伶) · 원함(院咸) · 왕융(王戎) 등이었다. 어찌 보면 자연이 좋아서 자연과 벗삼기 위해 들어 갔다기보다는 당시의 정치적 분위기에서 어쩔 수 없이 무위자연을 하게 된 것이다. 당시 상황을 좀더 살펴보면 간교한 꾀로 천하를 호령했던 조조가 유비, 손권 등과의 치열했던 전투로 지켜온 위의 조씨 왕조는 서서히 사마의 자손으로 권력이 넘어갔다. 이어 사마사 사마소 사마염으로 이어지면서 위의 조씨 황제는 실권 없는 껍데기만 남게 됐다. 한마디로 사마씨 일가가 공공연하게 조씨 황제를 겁박하던 시기다. 

 

그때 조조의 사위 ‘혜강’을 비롯하여 많은 왕실 친인척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사마씨에 붙어서 권력을 누릴 것이냐, 아니면 실권은 없지만 조씨 황실을 위해 끝까지 남아 있을거냐의 갈림길에 섰다. 조씨 황실에 붙는다면 사마씨 일가에 의해 끝내 죽음을 당할 것은 뻔한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신 군부 같은 사마씨 쪽에 붙는다면 주변에서 평생 변절자로 낙인 찍고 조롱받을 형편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선택한 것은 속세를 떠나 자연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당시에 그래서 그들에게 무위자연의 노장사상은 더할 나위 없는 정신적 지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속에서 청담을 즐기며 세상을 한탄하고 생활하였지만 사마씨에 협조를 거부한 조조의 사위 혜강은 끝내 목숨을 잃었다. 이와 유사하게 조선의 선비들도 연산군이나 인조 때에 죽림칠현을 자처한 인물이 있었으나 세상을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탄핵되었다. 

 

고려에서는 이 죽림칠현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죽고칠현(竹高七賢)이 있었다.  이인로, 오세재, 임춘, 조통, 황보항, 함순, 이담지 등을 일컫는다. 역시 꽃, 새, 달, 석양 등 화조월석(花鳥月夕)에 시와 술로 벗삼았다.

 

죽림칠현은 정치적으로 벗어난 것처럼 인식되어 왔지만 중국의 대문호 루쉰 (1881~1936)은 달리 해석했다. 죽림칠현은 마냥 무위자연으로 세상을 떠나 자연과 벗하며 생활했다기 보다는 그것 자체가 ‘정치적 표현’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침묵이나 자연과 벗 삼은 것도 백성들에게는 ‘무언의 정치적 메시지’를 준 것이다.

 

최근 국내에서는 조선의 멸망과 일제의 침략을 두고 정치권에서 말이 많았다. 중국의 한 왕조는 전한 후한을 합쳐서 400여년에 불과했다. 반면 조선왕조는 5백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조선왕조의 끝은 허무했고 무능했지만 기나긴 역사였다. 세계사에서도 단일 왕조가 이렇게 길게 이어온 것도 드문 역사다. 구한말 조선의 위정자들은 무능했지만 수많은 민중과 백성은 많은 피를 흘렸고 저항했다. 

 

루쉰은 자연과 벗한 죽림칠현 선비도 정치적 표현이라고 높여 말하듯이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역사의식은 분명 옳지 않다. 과거의 실정이나 과오는 마땅히 비판받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거울 삼아야하다. 하지만 무조건 무능하다고만 내팽겨치면 그 시절 징병과 징용으로 희생당한 부모 세대의 한(恨)은 누가 위로하고 치유해 줄 것인가?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입니다. '구글번역'은 이해도 높이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문 번역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 The following is [the full text] of the English article translated by 'Google Translate'. 'Google Translate' is working hard to improve understanding. It is assumed that there may be errors in the English translation.) 

 

Bamboo Forest Seven Prefectures and Silent Political Expressions

 

[Contributed] Yangseon Hong, free writer/CEO, Priest Communications

The seven seonbi (竹林七賢) are the seven scholars who turned their backs on corrupt political power and spent time in Cheongdam, gathering in the bamboo forest to enjoy harp and alcohol. The era was around the time when Cao Cao, who was the stage of the Three Kingdoms, died and a new era called Jin was opened by the Sama clan. When the dynasty changed from Wei to Qin (around AD 266), those who escaped from the chaos and went into the bamboo forest were Wanjeok, Shando, Huigang, and Perfume. · Ghost (劉伶) · Wonham (院咸) · Wang Yong (王戎), etc. In a way, rather than going in to make friends with nature because he liked nature, he was forced to do nothing in the political atmosphere of the time. Looking more closely at the situation at that time, the above Cao dynasty, which Cao Cao, who ruled the world with cunning schemes, defended it through fierce battles with Liu Bei and Sun Quan, gradually passed the power to the descendants of Sima. Then, as it led to samasa samaso sama salt, the above emperor of the Cho clan was left with only a shell without real power. In a word, it was a time when the Sama family publicly threatened the Cho family.

 

At that time, many royal relatives, including Cao Cao's son-in-law, Hyegang, were at a crossroads of choice. He was at a crossroads between whether he would join the Sama clan and enjoy power, or whether he would remain without real power for the Cho clan's royal family. If he was attached to the Cho family, it was obvious that he would eventually be killed by the Sama family. However, if you were attached to the new military-like Sama clan, you would be branded as a traitor for the rest of your life and ridiculed. So what they chose was to leave the world and enter nature.

 

At that time, for them, Muwijayeon's idea of ​​an old man was the best spiritual support. Nevertheless, while enjoying Cheongdam in nature and lamenting about the world, Jojo's son-in-law, Hyegang, who refused to cooperate with Sama, eventually died. Similarly, the scholars of Joseon were also impeached for disturbing the world.

 

In Goryeo, there was a Jukgochilhyeon (竹高七賢) who wanted to follow the will of this bamboo forest. These include Lee In-ro, Oh Se-jae, Im Chun, Jo Tong, Hwang Bo-hang, Ham-sun, and Lee Dam-ji. After all, flowers, birds, the moon, and the setting sun, etc., were made friends with poetry and alcohol.

 

Although the bamboo forest has been perceived as politically out of place, the great Chinese writer Lu Xun (1881-1936) interpreted it differently. Rather than living in harmony with nature after leaving the world as a result of unwieldy nature, Bamboo Forest Chil-hyeon praised it highly as a 'political expression' in itself. Silence and friendship with nature also gave the people an 'unspoken political message'.

 

Recently, in Korea, there has been a lot of talk in the political circles about the fall of Joseon and the invasion of Japan. The Han dynasty in China lasted only 400 years, including the former Han Dynasty. On the other hand, the Joseon Dynasty has a history of 500 years. The end of the Joseon Dynasty was futile and incompetent, but it was a long history. It is rare in world history that a single dynasty has continued this long. The rulers of Joseon at the end of the late Han Dynasty were incompetent, but many people and people shed much blood and resisted.

 

As Lu Xun exalts that even the Seven Hyeonbi scholars who are friends with nature are political expressions, the historical consciousness that undermines itself is definitely not correct. The facts and mistakes of the past should be criticized and used as a mirror so that they do not happen again. However, if we simply dismiss it as unconditionally incompetent, who will comfort and heal the conscription and the grief of our parents' generation who were victims of conscription at that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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